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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 역사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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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아모아모아 2019. 8. 19.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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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부흥 운동의 역사 1


660년(백제 의자왕 20년, 신라 태종무열왕 7년) 7월13일 백제 의자왕이 최측근과 함께 야음을 틈타 웅진성(공주)에 숨은 뒤 셋째아들 부여융이 나당연합군에 항복했다.

이때 신라 김법민(훗날 문무왕)이 부여융을 말 앞에 꿇어앉히고 얼굴에 침을 뱉으며 꾸짖었다.

“예전에 너의 아비가 나의 누이를 억울하게 죽였다. 그것이 천추에 한이 되어 마음이 아팠는데, 이제 너의 목숨이 내 손 안에 있게 됐구나.”

백제 부여융은 땅에 엎드린채 말이 없었다. 김법민은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인가.


18년 전인 642년(백제 의자왕 2년, 신라 선덕여왕 11년) 백제는 신라의 대야성을 함락시킨 뒤 항복한 대야주 도독 김품석과 그의 아내인 고타소랑 등을 죽였다.

고타소랑은 김춘추(태종무열왕)의 딸이자 김법민(문무왕)의 누이동생이었다. 고타소랑의 부음을 듣자 아버지 김춘추는 “기둥에 서서 하루종일 눈도 깜박이지 않고 사람이나 물건이 앞을 지나도 알아보지 못했다”고 한다. 한참 후 정신을 차린 김춘추는 “반드시 백제의 원수를 갚는다”고 맹세했다. 누이동생을 잃은 김법민(문무왕)도 백제라면 이를 갈았을 것이다. 그랬으니 항복한 백제왕자 부여융의 면전에 침을 뱉은 것이다.

5일 뒤인 18일에는 의자왕마저 항복했고, 나당 연합군은 8월2일 정식으로 승전의식을 펼친다. 백제와 백제인들에게는 너무도 굴욕적인 항복의식이었다.

“당상에 앉은 신라 태종무열왕과 소정방은 항복한 백제 의자왕과 아들 부여융을 당하에 앉혔다. 어떤 자들은 의자왕에게 ‘술을 따르라’고 조롱했다. 이 모습을 본 백제의 좌평 등 여러 신하들이 흐느꼈다. 눈물을 흘리지 않은 자가 없었다.”(<삼국사기> ‘백제본기·의자왕조’)

신라로서는 불구대천의 원수인 의자왕에게 한껏 모욕감을 주었으니 지극히 통쾌했을 지 모른다. 하지만 백제인들로서는 패자에게 최소한의 예의조차 갖추지않은 나당연합군을 보며 원한을 품었을 것이다.

출처: https://m.news.naver.com/hotissue/read.nhn?sid1=163&cid=1057470&iid2781637&oid=032&aid=0002870221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주류성이 항복했구나! 백제의 이름이 끊겼구나!‘백제 부흥운동 거점 부안 우금산성 남문지 확인.’ 올들어 두차례에 걸쳐 들어온 문화재청의 보도자료의 제목이다. 요컨대 ‘부안 우금산성은 백제부흥군의 최후 거점성’이라고 명시해놓은 것이다. 산성을 발굴한 전북문화재연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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