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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 선악과 사건의 탈무드 해석

by 모아모아모아 2019. 8.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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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 선악과 사건의 탈무드 해석

창세기 아담과 하와의 선악과 사건에 대한 유대교(탈무드)의 해석을 찾아보았습니다. 기독교에서는 인류 원죄의 기원임과 동시에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님의 구속역사의 시작이 되는 중요한 사건인데요, 예수님의 대속 사역을 인정하지 않고 율법의 실행을 중요시하는 유대교는 본 사건을 어떻게 설명하는지 궁금했습니다.

아래는 손영광님의 <한국중동학회논총 제35권 제1호 [2014. 06]: "아담 이야기가 끼친 종교의식(宗敎儀式) 비교연구">를 발췌한 것입니다.

결론을 요약해드리자면,

1. 하나님은 아담에게 안식일까지만 선악과 먹는 것을 금하셨다.
2. 아담의 선악과 범죄는 원죄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3. 뱀이 하와를 유혹하고 성관계를 하여 가인을 낳았다. (카발라)
4. 에덴동산의 생명나무는 토라(율법)를 말하는 것이다.
5. 안식일과 토라(율법)를 준행함으로 아담의 범죄를 바로잡고 하나님의 창조 사역을 완성할 수 있다.


기독교인들에게는 매우 황당한 내용인데요, 아래 내용을 읽어보시면 더 황당한 내용들이 많습니다.

먼저 탈무드에 대한 용어가 익숙치 않는 분들을 위하여 간략히 설명드리면, 하나님이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주신 율법이 당시 책으로 기록된 성문율법(타나크 = 구약)과 구전으로 전해오는 구전율법(탈무드) 두가지로 나뉩니다. 탈무드는 다시 구전율법을 책으로 기록한 미드라쉬와 이에 대한 주석서인 게마라로 나뉩니다. 성문율법인 타나크중 모세오경 부분을 특별히 '토라'라고 하는데요, 이 용어가 율법 전체를 지칭할 때도 혼용되어 사용됩니다.

<"아담 이야기가 끼친 종교의식(宗敎儀式) 비교연구">

"하쉠 하나님께서 그 땅에서부터 모든 나무가 자라도록 하셨다. 그것은 하나님의 눈에 기쁨을 주었다. 또한 에덴동산 중앙에는 먹기에 좋은 생명의 나무도 있었고 선과 악을 알게하는 나무도 있었다 ... (중략) ... 그러나 너희는 선과 악을 알게하는 나무는 먹지말라 왜냐하면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타나크 창세기 2장 9절,17절)

"전통적으로 유대교에서는 이 생명나무를 토라, 곧 구전 토라인 탈무드와 성문 토라인 타나크로 해석하고 있다. 토라를 통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며 악의 유혹을 이기고 마음을 다스리며 선을 행하는 능력을 향상시킨다고 가르친다"(Horowitz 1998, 60).

"뱀은 하쉠 하나님이 창조한 야생 짐승 중에 더욱 뛰어났다. 그 뱀이 여자에게 말하였다. 하나님께서 말하시길 너희는 동산의 어떤 나무도 먹을수 없다고 하셨느냐?(창세기 3장 1절). 뱀이 하와에게 가서 하나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중상모략한다. 그리고 뱀이 여자에게 말을 하길, 너는 반드시 죽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하
나님이 그날에 네가 먹을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너의 눈이 열리게 될 것이다. 그리고 너는 하나님처럼 선과 악을 알게 될 것이다"(타나크 창세기 3장 4-5절).

"유대교 신비주의 종파인 카발라파(Kabalah)의 경전인 조하르(Zohar)에서 이 뱀이 하와를 유혹하는 과정이 상세하게 묘사되있다. 하나님이 저주를 내리기 전까지 이 뱀은 똑바로 서서 걸었고, 사탄에게 매우 이상적인 존재였다. 또 이 뱀에게는 릴리트(Lilith)라는 이름의 배우자가 있었다."

<유대신화에서 릴리트는 하와보다 앞서 창조된 인류 최초의 여자로 아담의 첫번째 부인이라고도 합니다(???)>

"뱀이 하와의 벗은 몸을 보고 성적으로 욕망을 느껴 하와와 성관계를 하고 난 후에 아담과도 성관계를 했다. 아담과 뱀이 둘 다 하와와 성관계를 하였는데 그 결과로 가인이 뱀의 자식으로 , 아벨이 아담의 자식으로 태어났다."(Segal & Dunne 2009, 42-43).

하와의 제안을 받은 아담은 하나님이 금지한 선악과를 먹었다. 그렇지만 아담의 이 행위를 '원죄'로 규정하지 않는다는 점이 유대교의 관점이다. 개혁파 유대교의 선구자라 할 수 있는 철학가 모세 멘델스존(Moses Mendelssohn)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간단히 말하면 원죄의 잔재라 할 수 있는 어떠한 이유도 없다. 토라는 이 부분에 대하여 어떤 언급도 하지 않고 있다. 아담은 죄를 지어 죽었고 그 후손들도 역시 그랬다. 그러나 그의 죄가 후손들에게 전가된 것이 아니다."

"유대교 문헌에는 뱀이 이렇게 아담을 타락시키는 배경과 이유에 대해 설명한다. 첫 사람 아담이 에덴동산에 앉아 있었다. 일하는 천사들이 열심히 그를 위해 빵을 굽고 시원한 포도주를 준비하고 있었다. 뱀은 아담의 영광을 바라보았고 그를 부러워했다. 모든 피조물들이 아담을 보고 그를 두려워하며 그를 그들의 창조자로 생각하고 그앞에 절을 하고자 모여들었다. 그러자 아담이 그들에게 말하길, ‘피조물들이며 무엇을 하는가? 왜 너희들이 나에게 절하고자 왔는가? 이리오라 나와 너희들 우리가 우리를 창조하신 그분께 영광과 권세로 칭송하자.’ "

"일하는 천사들이 거룩하신 분앞에 서서 말하길, ‘온 세상의 통치자시여, 주께서 이 남자를 존귀케 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러자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길, ‘너희들은 내가 만든 모든 피조물의 이름을 부를 수 있는가?’ 라고 묻자 그들은 그렇게 하질 못했다. 그러나 아담은 바로 그 자리에서 그 이름들을 불렀다. 이것을 본 천사들은 물러나며 말하길, ‘만약 우리가 이 남자가 하나님앞에서 범죄한 사실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그를 이길수 없다.’ 라고 하였다. 곧 뱀은 시기심으로 아담을 계략에 빠트리고 그 결과 아담은 하나님께 범죄하였다."


아담의 선악과 범죄사건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랍비 카플란에 따르면 아담은 오직 잠깐 시간동안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명령을 받았다고 한다. 아담이 창조된 여섯째 날에 아담은 안식일까지는 선악과를 먹지 않도록 하나님께 명령을 받았다. 그러나 아담은 그 열매를 먹으므로 하나님의 명령을 위반하였다. 실제적으로는 단지 위반한 것 뿐이다. 곧 선악과를 안식일까지만 안먹으면 되는 것이다. 프랑키엘에 따르면 아담과 하와는 안식일에 이르러야 그들의 창조의 최종 완성이 이루어진다."

"그러나 그들은 안식일에 이르기전에 뱀의 유혹을 선택했다. 곧 그들의 창조가 아직 완성되기도 전에 그들은 미완성의 상태에서 뱀의 유혹을 선택했다. 만약 아담과 하와가 안식일까지 기다렸다면 그들은 창조의 완성안에서 그들이 선악과 나무와 생명나무를 다 먹도록 허락받았을 것이다. 곧 세상의 창조의 완성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카플란은 유대인이 안식일에 참여한다는 것은 아담이 안식일까지 기다려서 창조의 완성안에서 선악과를 먹는 것과 같은 것이며 곧 아담의 창조의 완성이며 그것을 계승하는 것이다."

"유대인이 안식일을 지킨다는 것은 아담이 하지 못했던 일을 회복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안식일을 지킨다는 것은 선악과를 합법적으로 먹으면서 창조의 완성을 이루는 것이다. 선악과의 의미는 안식일까지 기다려서 먹어야 하는 인간 창조의 완성의 의미이다. 그러나 아담은 안식일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선악과를 먹음으로 에덴동산에서 추방되고 죽음의 결과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에덴동산에 있는 생명나무를 더 이상 먹지 못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탈무드는 아담의 회복에 대한 길을 설명한다. 탈무드는 뱀이 하와에게 주입한 욕망으로 아담이 죄를 범하는데 영향을 끼쳤지만 하나님이 토라를 인간에게 주심으로 토라의 교훈을 수용하는 자에게 그 욕망에서 자유케 된다고 하였다. 악의 욕망 역시 하나님이 창조하였지만 그 욕망을 이기는 것은 토라이며 하나님은 그 토라를 창조하였다. 이것은 곧 원죄 개념과는 상관이 없는 것이다"(Talmud Shabbath 146a).

"탈무드는 아담의 죄의 사건을 설명하면서 동시에 이스라엘민족이 시내산에서 하나님앞에서 토라를 받으므로 이스라엘이 정결케 되는 사건을 설명한다. 그리고 이 두 사건을 하나로 연결시킨다. 곧 토라를 받은 이스라엘이 아담의 죄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며(Talmud Avodah Zarah 22b), 더 나아가 유대인들은 토라를 통하여 아담의 범죄를 다시 바로 잡는다고 가르친다"(Kaplan 1983, 114).

하나님의 창조가 미완성이기 때문에 인간이 창조역사를 도와서 완성시켜야 한다는 '티쿤 올람' 사상이 유대인 창의성의 바탕이라고 하는데 사실 기독교적 관점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생각입니다. 하나님의 완전한 창조를 훼손한 것은 인간이고, 이 세상은 완성이 아닌 멸망을 향해 나아가고 있으며, 인간은 하나님 앞에 철저히 무능한 죄인일 뿐, 토라를 지킴으로써 하나님을 도와 창조 사역을 완성한다는 주장은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의 의미를 철저히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난번 가인과 아벨 해석과 마찬가지로 지혜의 보고(?)라고 하는 탈무드가 적어도 영적인 지혜에 있어서는 율법에 눈이 가린 소경과 다를 바 없다는 느낌입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이 백성의 마음으로 둔하게 하며 그 귀가 막히고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컨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서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이사야 6:9 ~ 10)

한편 선악과 나무의 정체에 대해서는 포도나무, 무화과, 밀줄기(곡물), 에트로그(Etrog)열매 등 다양한 주장이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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