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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칠게 읽는 전쟁 세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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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아모아모아 2019. 8. 18.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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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과 서양의 최초의 대격돌! : 페르시아 전쟁 (BC 492년 ~ BC 448년) ⑦


『제 3차 페르시아 전쟁 : 아르테미시온 해전(Battle of Artemision)』




1. 아르테미시온의 청동상 (The Artemision Bronze)


라케다이몬의 레오니다스 왕이 이끄는 헬라스 육상 연합군이 테르모필라이 협로에서 페르시아 대군에 맞서 장렬하게 고군분투하고 있을 무렵, 에우보이아 섬 북단의 아르테미시온 곶(Cape Artemision, 오늘날의 아르테미시오)에서는 아테나이의 명장 테미스토클레스가 이끄는 헬라스 연합 함대가 페르시아의 함대에 맞서 결사항전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오늘날의 아르테미시온 곶]


에게 해의 놀라운 풍광에 둘러싸인 아르테미시온 곶은 그 아름다움 못지않게 고대부터 군사적 요충지로 매우 중요한 곳이었습니다. 트라키아로부터 마케도니아를 거쳐 테살리아와 마그네시아를 잇는 에우보이아 섬 최북단에 위치한 까닭에, 아티카 반도와 펠로폰네소스 반도로 진입할 수 있는 주요 해상로인 에우리포스 해협(Strait of Euripos, 에우보이아 섬과 헬라스 본토의 보이오티아 사이의 좁은 해로)을 방어하는데 매우 중요한 전초 지역이었습니다.

아르테미시온은 해전이외에도 '아르테미시온의 청동상(The Artemision Bronze)'으로도 유명합니다. 이것은 1926년에 아르테미시온 곶 앞의 해저에서 발견된 높이 약 2m의 청동상으로, 제우스 또는 포세이돈을 표현한 것이라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현재 아테나이 국립고고미술관에서 소장 중인 이 청동상은 BC 5세기 무렵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왼팔을 쭉 뻗고 왼발은 같은 방향으로 몸을 지탱하며 오른손에 든 창(지금은 소실함)을 던지려는 제우스(또는 포세이돈)의 웅대하고 비장한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아울러 콘트라포스토의 입체감과 역동성을 가장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어서, 고전기 헬라스 청동상을 대표하는 매우 가치높은 작품이라 평가받고 있습니다.

[ '아르테미시온의 청동상(The Artemision Bronze)']


고전기 헬라스의 찬란한 문화적 유산을 간직했던 아르테미시온에도 한때는 전란의 소용돌이 한복판이 되기도 했는데, BC 480년, 헬라스 연합함대와 페르시아 함대가 3일 밤낮의 연속 교전이 벌어졌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살라미스 해전(Battle of Salamis)'이라는 세계적인 해전 가운데 하나를 야기하게 됩니다.



2. 페르시아 함대와 아르테미시아


이오니아에서 출항한 페르시아 함대는 그대로 북상하여 트라키아로 우회하여 테살리아를 거쳐 그대로 마그네시아의 해안선을 따라 남하하기 시작했습니다. 페르시아 함대의 최초 병력 규모에 대해 헤로도토스는 다음과 같이 열거하고 있습니다.

[페르시아 함대를 구성했던 속국들(빨간색)]



그는 '역사'에서, 쉬리아를 포함한 포이니케(페니키아) 군이 300척, 아이귑토스(이집트) 군이 200척, 퀴프로스 군이 150척, 킬리키아(소아시아 남동부의 페르시아 속국) 군이 100척, 이오니아 군이 100척, 카리아(이오니아 남부의 페르시아 속국) 군이 70척, 아이올리스(소아시아 북부 연안의 페르시아 속국) 군이 60척, 뤼키아(소아시아 서남부의 페르시아 속국) 군이 50척, 팜필리아(뤼키아와 킬리키아 사이의 페르시아 속국) 군이 30척, 에게 해 도서 지역 중 페르시아에게 항복한 나라들의 함대 47척 등 총 1207척의 페르시아 함대가 이오니아에 집결하여 출항했다고 적고 있습니다.

[카리아의 여왕 아르테미시아]

[영화 '300 : 제국의 부활' 중 에바 그린이 연기한 아르테미시아]



페르시아 함대는 다레이오스 1세의 아들이자 크세르크세스의 이복동생인 아카이메네스(Achaimenes)와 아리아비그네스(Ariabignes), 카리아 인근의 도시 칼린도스의 사트라프(satrap, 총독을 뜻하는 페르시아 어)인 다마시튀모스(Damasithymos) 그리고 카리아와 할리카르낫소스(Halicarnassos)의 여왕 아르테미시아(Artemisia I of Caria)가 지휘하고 있었습니다. 이 중에서 아르테미시아는 아르테미시온 해전과 살라미스 해전을 다룬 영화 '300 : 제국의 부활(300: Rise of an Empire, 2014)'에서 에바 그린이 연기한 캐릭터와 동일인물이지만 영화 속에서 그려지는 그녀의 참혹한 과거와 마녀(!)같은 잔인한 면모는 모두 지어낸 허구입니다.

아르테미시아는 원래 헬라스 인으로, 그녀의 아버지 뤼그다미스(Lygdamis I)는 할리카르낫소스의 사트라프였고, 어머니는 크레타 섬 출신의 여인이었다고 합니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출중한 외모와 남자들을 압도하는 과단성과 용맹으로 일찌감치 아버지의 뒤를 잇는 사트라프로 점쳐지고 있었습니다. 특히, 지략에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크세르크세스 1세는 아르테미시아를 특별히 총애했으며, 그녀의 아버지가 죽자, 카리아와 할리카르낫소스에 대한 '여왕(Queen)'의 지위를 인정해줌으로써, 다른 속국들의 사트라프들과 차별을 두었습니다. 특히, 해전에서의 전략에 뛰어난 재능을 보인 탓에, 크세르크세스 1세는 헬라스 연합군과의 해전에 그녀를 전격적으로 기용하여 페르시아 함대의 지휘관 중 한 명으로 임명합니다.

후에 페르시아 전쟁이 끝나고 나서 다시 카리아로 돌아온 아르테미시아는 여왕으로 선정을 펼쳤다고 전해지며 그녀의 죽음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있지 않습니다. 이후, 아르테미시아의 뒤를 이어 그녀의 아들 피신델리스(Pisindelis)가 카리아와 할리카르낫소스의 통치자가 되었고, 피신델리스 사후에는 그의 아들 뤼그다미스 2세(Lygdamis II)가 사트라프의 지위를 이어받습니다. 뤼그다미스 2세가 죽은 뒤 뤼그다미스 가계는 완전히 끊어져 버리고, 카리아와 할리카르낫소스는 페르시아 제국의 약화를 틈타 완전히 독립하여 아테나이가 주축이 된 델로스 동맹(Delian League)에 가입합니다.



3. 전초전

[헬라스 연합함대를 구성했던 폴리스들. ① 아테나이, ② 코린토스, ③ 칼키스, ④메가라, ⑤ 아이기나, ⑥ 시퀴온, ⑦ 라케다이몬, ⑧ 에피다우로스, ⑨ 에레트리아, ⑩ 서부 로크리스, ⑪ 트로에젠, ⑫ 스튀라, ⑬ 케오스]



한편, 페르시아의 함대의 규모에 비해, 헬라스의 연합함대는 아테나이 군이 127척, 코린토스 군이 40척, 칼키스(에우보이아 섬 서부 연안의 폴리스) 군과 메가라(코린토스 지협 북동부의 폴리스) 군이 각각 20척, 아이기나(코린토스 지협 남부 앞바다에 있는 섬나라) 군이 18척, 시퀴온(코린토스 인근 폴리스) 군이 12척, 라케다이몬 군이 10척, 에피다우로스(펠로폰네소스 반도 북동부의 폴리스) 군이 8척, 에레트리아 군과 서부 로크리스 군이 각각 7척, 트로에젠 군이 5척, 스튀라(에우보이아 섬 서부 연안의 폴리스) 군과 케오스(퀴클라데스 제도의 섬나라) 군이 각각 2척 등 총 278척 규모였다고 합니다.

숫적으로는 페르시아 함대에 비해 열세였지만, 헬라스 인들만큼 거칠기로 이름난 헬라스 본토의 울퉁불퉁한 해안 지형에 익숙한 사람들은 없었기에, 좁은 해협의 특성을 잘만 이용한다면 승산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테미스토클레스와 헬라스 연합군의 명장들은 이런 지형상의 특성을 염두에 두고 전략을 짜기 시작했습니다.


이즈음에 마케도니아의 테르마이(Thermai, 지금의 테살로니키)를 출발한 페르시아 함대는 테살리아의 올륌포스 산을 끼고 남하하면서, 10척의 정찰선을 마그네시아 반도 남단의 스키아토스(Skiathos) 섬으로 보내 경계임무를 맡깁니다. 때마침 테미스토클레스의 전략에 따라 아르테미시온 곶에 집결한 헬라스 연합군도 페르시아 함대가 남하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정찰선 3척을 스키아토스 섬 쪽으로 북상시킵니다. 그러나 2주 동안 정찰선은 발견되지 않자, 헬라스 연합군은 점점 초조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스키아토스 섬으로부터 방화로 추정되는 불길이 치솟았고, 이내 헬라스 연합군은 첩자로부터 3척의 정찰선이 페르시아 군에 나포된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에 헬라스 연합군은 적의 규모와 남하 속도를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혼란에 빠진 나머지 테미스토클레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칼키스까지 후퇴합니다.

한편, 전속력으로 남하하던 페르시아 함대는 마그네시아 반도의 연안에 도착합니다. 그런데 페르시아 함대가 마그네시아 반도의 연안을 따라 쭉 남하하여 10척의 정찰선이 기다리고 있는 스키아토스 섬에 이르렀을 무렵, 그들을 맞이한 것은 '헬레스폰토스의 바람(Hellespontos's Wind)'이라 불리던 거대한 폭풍이었습니다. 3일에 걸쳐 불어닥친 폭풍은 페르시아 함대의 전열을 혼란에 빠뜨렸고, 400척 이상의 전함이 난파시켰습니다. 수많은 병사들이 목숨을 잃었고, 가지고 온 군수물자도 상당 부분을 잃게 되었습니다.


반면, 헬라스의 연합함대는 다행히 칼키스로 후퇴해있었기 때문에 폭풍의 피해를 빗겨갈 수 있었습니다. 에우보이아 섬의 고지대에 있던 정찰병들로부터 폭풍에 박살이 난 페르시아 함대의 상황을 전해들은 헬라스의 연합함대는 페르시아 함대가 거의 궤멸되었으리라 판단하고는 다시 북상하여 아르테미시온 곶으로 향합니다.

그러나 아르테미시온 곶에 도착한 헬라스 연합함대는 아연실색하고 맙니다. 간신히 폭풍을 이겨내고 남하한 페르시아 함대가 아르테미시온 곶과 마주보고 있는 마그네시아 반도 남단의 아페타이 곶(Cape Aphetai)에 집결해 있었던 것입니다. 게다가 페르시아 함대의 피해가 아무리 컸다해도, 그들의 함대 규모는 헬라스 연합함대의 4배 이상으로 여전히 압도적이었습니다. 이에 헬라스 연합함대의 사령관 중 한명인 에우비아데스(Eubiades)와 아데이만토스(Adeimanthos)는 철군을 주장하고 나섭니다. 페르시아 군에게 유린당할 것이 두려웠던 아르테미시온 사람들이 또 다른 사령관이었던 테미스토클레스에게 뇌물을 주어 두 사람을 설득해달라고 호소합니다. 테미스토클레스는 이들에게 받은 돈을 에우비아데스와 아데이만토스에게 주고 그들을 달랬고, 마침내 개전을 결정하게 됩니다.




4. 요동치는 아르테미시온

페르시아 군의 전술은 이러했습니다. 미리 200척의 전함으로 하여금 헬라스의 연합함대 몰래 에우보이아 섬을 우회하게 한 다음, 에우리포스 해협을 북상하면서 협공을 가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200척의 페르시아 전함이 에우보이아 섬을 우회하면서 남하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이 정보는 페르시아 군에 속해있던 헬라스 인의 배신으로 누설되었고, 헬라스의 연합함대도 페르시아의 우회 함대를 격파하기 위해 심야에 출항하여 맹렬히 그 뒤를 뒤쫓았습니다.

날이 밝자, 전투가 개시되었고, 페르시아 함대는 헬라스의 연합함대가 소규모임을 알고는 포위 전술을 구사합니다. 그러나 해전에 능숙한 테미스토클레스가 이끄는 아테나이 함대가 선간돌파전술(船間突破戰術, 두 전함 사이를 파고들어 전열을 흐트러뜨리는 전술)을 펼쳐 적의 포위진을 깨버리기 시작합니다. 그 사이 전열이 흐트러진 페르시아의 전함들을 2진의 헬라스 전함들이 일제히 달려들어 두동강이 내버렸습니다.

그래도 페르시아 전함의 수가 상대적으로 많았기 때문에, 전투는 일진일퇴를 거듭합니다. 그럼에도 헬라스의 연합함대는 페르시아 전함 30여 척을 나포하는 등의 성과를 올립니다. 페르시아 함대는 우회 함대를 눈이 빠져라 기다렸지만 그림자 하나 보이지 않았는데, 페르시아의 우회 함대는 에우보이아 섬을 남하하다가 또 다시 폭풍에 휘말려 모조리 전멸해버린 후 였습니다.

다음 날, 정오까지는 전투가 소강상태에 들어갔습니다. 그 사이 페르시아 군은 전열을 재정비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헬라스 연합군은 페르시아의 우회 함대를 섬멸하러 급파된 전함들이 돌아와 우회 함대가 폭풍을 만나 전멸했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크게 고무됩니다. 그리고 오후가 되자 헬라스의 연합함대는 페르시아 군이 정찰을 보낸 킬리키아 전함들을 불시에 습격하여 나포하는 쾌거를 올립니다.

  • 출처 - 역사랑 놀자


셋째 날이 되자, 전열을 재정비한 페르시아 함대는 총공격을 감행합니다. 헬라스 연합함대는 페르시아 함대가 초승달 모양으로 다시 한번 포위진을 짜려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 전함들을 최대한 길게 늘어뜨려 방어선을 구축하는 한편, 일부 전함을 외곽으로 돌려 적함의 측면에 타격을 주는 전술을 구사합니다.

전투는 서로 하루종일 치열하게 전개되었고, 양측 모두 팽팽한 전력을 과시했습니다. 밤이 되자 양측 모두 상당한 손실을 입은 채 전투는 중지됩니다. 이때 헬라스 연합함대에 테르모필라이로부터 비보가 날아듭니다. 테르모필라이 전투가 패배하고 페르시아 육군의 전속력으로 보이오티아와 아티카 반도로 진격함에 따라, 헬라스 연합함대도 비상이 걸립니다.

테미스토클레스는 함대에 철수 명령을 내리고 헬라스 연합함대는 최후의 방어를 위해 코린토스 지협과 아티카 반도가 만나는 앞바다인 살라미스 해협으로 향합니다. (계속)







※ 참고서적

- '역사', 헤로도토스 著, 천병희 譯, 숲출판사
- '페르시아 전쟁', 톰 홀랜드 著, 이순호 譯, 책과함께
- 'The Greco-Persian Wars', Peter green 著,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 'The Greek and Persian Wars, 499–386 BC.', Philip de Souza 著, Osprey Publis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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