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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봉오동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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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아모아모아 2019. 8. 5.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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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전 이 땅에서 써 내려갔던 승리의 역사, 봉오동 전투


🔊 봉오동(鳳梧洞) 전투

봉오동 전투는 1930년 6월에 독립군 연합 부대가 만주 봉오동 계곡에서 일본군과 싸워 크게 승리한 전투이다.


3.1 운동 이후 우리 민족의 항일 투쟁은 한층 치열해졌다. 특히 만주와 연해주 일대에서 조직된 독립군은 국경 근처에 있는 일본군을 끊임없이 공격해 커다란 피해를 주었다.

홍범도가 이끄는 대한 독립군도 1920년 6월에 두만강을 넘어 일본의 헌병 순찰대를 공격했다.

(홍범도, 洪範圖, 1868~1943)

이에 일본군은 독립군을 추격하면서 두만강을 넘어 삼둔자(三屯子) 까지 들어와 그곳에 사는 한인들을 잔인하게 살해했다.

독립군은 이때 침입한 일본군을 매복 공격하여 커다란 타격을 입혔는데, 이를 '삼둔자(三屯子) 전투'라고 한다.


'삼둔자 전투'로 위기를 느낀 일본군은 독립군을 공격하여 섬멸할 계획을 세웠다. 그러고는 두만강을 넘어 독립군의 근거지가 있던 봉오동(鳳梧洞) 으로 향했다.

일본군의 대대적인 공격이 있을 것을 예상한 홍범도는 자신이 이끄는 대한 독립군뿐 아니라 최진동이 이끄는 군무도독부, 안무가 이끄는 국민회군 등과 함께 연합 부대를 만들었다.


이윽고 일본군이 두만강을 넘어 공격해오자 독립군 부대는 봉오동 주민을 모두 대피시킨 뒤 일본군을 봉오동 골짜기로 끌어들여 기습적으로 공격했고, 좁은 골짜기에 갇힌 신세가 된 일본군은 커다란 피해를 입고 도망치듯 물러났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발표에 따르면 이 전투에서 일본군 사망자는 157명, 부상자는 200여 명에 달했다. 반면 독립군은 4명이 사망하고 2명의 부상자가 생기는 데 그쳤다.

독립군이 거둔 첫 번째 큰 승리였던 봉오동(鳳梧洞) 전투 이후 독립군의 사기는 크게 높아졌고, 독립군이 보다 조직적으로 재편성 되는 계기가 되었다.


🎬 영화의 줄거리


1919년 3. 1운동 이후 봉오동 일대에서 독립군의 무장항쟁이 활발해진다.
일본은 신식 무기로 무장한 월강추격대를 필두로 독립군 토벌 작전을 시작하고, 독립군은 불리한 상황을 이겨내기 위해 봉오동 지형을 활용하기로 한다.

항일 대도를 휘두르는 비범한 칼솜씨의 해철(유해진)과 발 빠른 독립군 분대장 장하(류준열), 그리고 해철의 오른팔이자 날쌘 저격수 병구(조우진)는 빗발치는 총탄과 포위망을 둟고 죽음의 골짜기로 일본군을 유인한다.


계곡과 능선을 넘나들며 귀신같은 움직임과 예측할 수 없는 지략을 펼치는 독립군의 활약에 일본군은 당황하기 시작하는데............

1920년 6월, 역사에 기록된 독립군의 첫 승리 봉오동 죽음의 골짜기에 묻혔던 이야기가 지금부터 시작된다.


100년전 이 땅을 지켰던 선조들이 오늘날 우리에게 보내는 메시지는 과연 무엇일까요?

8월 7일 봉오동 전투의 개봉날!
그 해답을 찾아봅시다.
Let's 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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