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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전설 - 도천산 (한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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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아모아모아 2019. 9. 17.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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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당과 구경꾼들의 손에도 모두 비수가 번쩍였다. 그물에 휘말린 왜구의 무리들은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차례로 쓰러져 갔다. /

기러기가 함박산(함박꽃)을 찾아 하늘로 날라 올라간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연대는 알 수 없지만 옛날 자인현에 살던 한장군이 이 산에서 토성을 쌓아 왜적과 싸웠다고 전해지기도 한다.도천산에는 장군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에 한장군이 앉았던 곳은 평평하고,

주먹으로 때린 부분은 주먹자국이 남아 있다.
또한 임진왜란 때 명나라 장수 이여송이 우리나라의 지도를 펴놓고 보니,

장군이 많이 태어날 형상이라 하여 붓으로
혈(穴)을 끊었는데 옛날에는 실제로 산허리가 잘룩하였으나 요즈음은 우거진 수목으로 많이 덮혀서 보이지 않는다.

혈이 끊긴후 장군들이 그 산에
올라가기만 하면 죽었고, 또한 바위에서 피가 쏟구쳤다고 한다.

소나무를 베면 움이 터지 않는데
그 후 도천산에서는 소나무를 베어도 다시 움이 터고, 개미는 사람을 물지 못한다고 한다.

ㅡ 한장군 전설

전승지: 자인면 계정 숲
한장군은 신라 혹은 고려시대 사람이라고만 전해올 뿐 확실한 연대는 알 길이 없고 이름도 모르지만 전설이 아닌 실존했던 인물로 고을의 수호신이다.

당시 왜가 도천산에 진을 치고 백성들을 괴롭히자 장군은 이를 해결할 방도를 마련하였다.
도천산 밑 버들못 둑에서 장군은 여자로 가장하여 그의 누이와 함께 꽃관을 쓰고 춤을 추었다.

꽃관을 쓰고 춤을 추는 광대가 둘러서서 놀음을 벌리고 풍악을 울려 흥을 돋구고, 못에는 화려하게 꾸민 배를 띄웠다. 둘레에는 어느덧 구경꾼들이 몰려 들었고 춤과 가락은 한결 흥겨워졌다.

이것이 곧 지금까지 전해져 오고 있는 여원무이다.
장군의 뜻대로 구경꾼 중에는 도천산에서 내려온 왜구의 무리도 섞여 있었다.
왜병은 흥겨운 여원무에 정신을 잃고 구경을 하고 있었다.

이 때 장군은 미리 준비했던 칡으로 만든 그물로 얽어 한꺼번에 쳐서 없애고 또 칼로 찔러 죽였다. 아름다운 꽃춤의 주인공이 무서운 장군으로 바뀌었다.

무당과 구경꾼들의 손에도 모두 비수가 번쩍였다. 그물에 휘말린 왜구의 무리들은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차례로 쓰러져 갔다. 춤추던 이도 모두 한장군이 미리 배치해 두었던 무사들이었으며,

칡으로 만든 그물을 미리 깔아 두었던 것이다.
그들은 몰죽음을 당했고 못 물은 피로 물들었따.
지금도 못뚝에는 한장군의 칼흔적을 지니고 있는 바윗돌이 있는데, 사람들은 이를 참왜석 또는 검흔석이라고 부른다.

한장군의 사당은 자인면 서부리와 원당리,
진량면 마곡리, 용성면 송림리에 있었다.
이 중 용성면 송림리의 경우
옛날 바구나무 숲에 한장군 사당이 있었으나
일제 말 기독교인들이 이를 철거하여,

지금은 돌무더기만 남아있다.
한장군을 기념하는 한장군제와 여원무가 음력 단오날 단오행사와 함께 성대하게 매년 실시되어 왔으나 근래에 와서는 농번기 일손부족으로
격년제로 실시되고 있다.

단오날 오전 8시가 되면 자인면 서부리 서림숲 한장군 사당에서 대제의 막이 오르고 제전집사에 의해 제사가 모셔진 뒤, 한장군놀이와 여원무, 팔광대놀이, 가장행렬, 씨름, 윷놀이, 농악놀이, 무녀굿, 노래자랑, 그네뛰기 등 다채로운 행사가 진행된다.

이날 모이는 관중은 수 만명을 넘어 자인고을은 온통 인파로 뒤덮이고 도천산 아래 버들못은
붉게 핏빛으로 물든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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